이번 주에 가장 핫한 뉴스는 노키아의 리브랜딩이었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뉴스겠지만, IT 계열의 일을 하는 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노키아의 명성은 한때 넘사벽의 파워를 자랑하던 휴대폰 브랜드였고, 절대 고장나지 않는 핸드폰 3310으로 유명했지. 한 때 세계 휴대폰 점유율 1위를 할 때도 있었고. (나중엔 모토로라 통신기술 사업을 인수하기도)
개인적으로는 노키아 폰을 써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좋아하는 회사 중 하나야. 윤리 경영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심비안과 미고 등 OS 개발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무엇보다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서 유명 디자이너와 다양한 협업을 했기 때문이야.
이번에 노키아가 리브랜딩을 한 이유는 매우 단순해.
• 스마트폰 사업과 결별한 노키아의 새 이미지 구축 (폭스콘에 팔았음)
•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사업 실패로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 털어내기
• 형태가 있던 (스마트폰) 사업에서 추상적인 서비스 (네트워크, 기술, 인프라) 로의 전환
• 사람이나 기업이 이름을 바꾸는 이유는 둘 중 하나; 결혼(합병)을 했거나 사람들이 잊기 바라는 재난을 당했거나 - 피터리치
사람에 따라 보는 눈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번 리브랜딩이 나름 이전의 로고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 자세히 보면 N, K, A 등의 기울기나 K의 꺾임, A의 가로대 높이 등이 기존 로고의 특징을 어느정도 반영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
하지만, 이번 로고는 너무나 기하학적이어서 폰트로서의 특징을 거의 잃어버렸어.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도 거의 도형의 논리에만 의존한 작도이고, 글자 사이의 여백도 딱히 명확한 단서랄 게 없어.
OS meego의 전후로, 노키아는 서체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단 말이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을 다 모아다가 가이드를 만드는데 - 그 중심을 폰트 제작에 두었을 정도로 서체에 진심인 회사였는데, 로고의 문자적인 성질을 이렇게 무시한다고?
뭔가 글자인 양 써놓기는 했는데, L의 형태는 3개나 되고, 자간은 논리가 없이 제각각이고, 심지어 행간도 달라... 참... ㅠㅠ
그러니까, 이건 이전 로고를 계승하긴 했지만 - "이건 문자가 아니야, 우린 도형으로 쓸 거야." - 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어. 그리고 이 부분에서 사람들마다 호오가 갈린다고 생각해. 전통적인 타입페이스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너무 싫어할 거고, 이걸 도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름 좋아할 거고. (나는 후자임)
나는 노키아가 리브랜딩 할 때의 대전제가 이랬을 거라고 생각해.
• 젊고 새로운 느낌을 줌으로써 강한 대내외적 쇄신을 이끌어낼 것
• 필요없는 요소를 넣지 말고, 가급적이면 최소한의 형태만으로 제작할 것
• 강한 구심점이 되어, 노키아의 모든 시각요소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할 것
• (기존 레거시 디자인과 잘 붙을 수 있도록 할 것)
개인적으로는, 미적인 부분을 차치하면, 이 전략은 노키아의 현재에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던 거 같아. 노키아가 저지른 단 하나의 실수라면 하필 그 많은 브랜딩 에이전시 중 리핀코트(https://lippincott.com)를 고른 것. ^^
리핀코트의 장점이자 약점은, 너무 야하고 은유를 모른다는 점이야. 심미적인 관점보다 날카롭게 전략 하나만 보는 디자인.
일단 리핀코트는 - 지나치게 주제의 본질적인 면 만을 신경 쓰고, Geometric 서체를 맥락 없이 막 쓰고, 디테일에 약해. 차라리 랜도 정도만이라도 디테일에 신경 써주면 좋겠는데.
후반작업에 신경을 덜 쓰니, 이런 뻔한 어플리케이션이 나오는 거지. 맥락 없는 3D 개구리라던지, 대학생들도 생각할 수 있는 O의 활용이라던지.
쓴 내용을 돌아보니 절반 이상이 비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리브랜딩이 매우 좋은 결과라고 생각해. 이걸 이어받은 노키아 내부의 브랜딩 담당자를 믿고 있기도 하고. (바뀐 게 아니라면)
여전히 노키아는 Nokia pure 서체를 사용하고 있고, 새 로고와 어울리는 형태와 규모로 잘 사용하고 있어. 이 부분은 리핀코트의 손이 닿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다행인 것 같아. ^^
로고를 보는 데는 여러 관점이 있겠지. 누군가는 심미성을 볼 테고, 누군가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볼 테고. 또 누군가는 브랜딩 전략을 볼 테고 말이지.
내가 이 로고가 (꽤) 잘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
• 노키아의 히스토리와 현재 위치를 잘 파악했고,
• 노키아가 지향하는 미래, 비즈니스 전략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 그간 유일하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던 부서^^ 노키아 브랜딩팀을 믿고 과하게 질러봤다는 점.
• 무엇보다도, 전면적인 리브랜딩의 구심점으로서 방향을 적당히 좁혀 두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
갈 길은 멀지. 지나치게 원론에 집착했던 리핀코트의 하이텐션을 실용적으로 잘 풀어내고, 열심히 노키아스럽게 조정하는 일이 남았지만, 항상 윤리적으로 경영했고 디자인적으로도 열린 마음을 가진 노키아니까, 나는 좀 더 믿어볼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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