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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High : 짧고 깊게 패인 교훈

ARTBRAIN 2020. 12. 23. 03:42

여느 포트폴리오 사이트들과는 다르게 - 프로젝트의 상세한 내용보다는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적으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상처와 아쉬움을 말하게 되네. 큰일이야, 포트폴리오가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있어. ^^;

물론 모든 프로젝트마다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지, 어떤 상황에서도 나름 얻는 게 있고, 이룬 게 있는 법이잖아.

실제로도 나는 그간 많은 성취를 이뤘고, 지난 20년 동안 4~50개의 국내외 어워드를 수상했으니, 혹자는 내가 너무 궁상맞다고 생각하기도 할 거야. 그런데... 사실, 프로젝트의 기쁨은 금세 휘발되는 것 같아. 아무리 대단한 성취라 하더라도, 또는 그 성취를 금전적으로 돌려받더라도, 아쉬운 게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거 - 이 직업이 그런 숙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그래? ^^

오늘 소개할 프로젝트는 플랜하이라고, 교육 포털 사이트야.

컬러 프로파일이 잘못 되었는지, 색이 날아갔어 - (C) PlanHigh

이 프로젝트 역시, 어워드를 한두 개 정도 탄 것 같고, 기간도 일정도 큰 무리 없이 완결되었어. 겉으로 보기엔 나무랄 데 없었지. 엄청난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뭐 나름 괜찮았어.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난 두 명의 팀원을 잃었어.

H책임과 K선임. 반 년 정도 함께 일했던 이들은 꽤 괜찮았어. 의욕도 있고 재능도 있고. 교육 포털이라는 속성상 그다지 난이도가 높지 않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이 둘 중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일이 처리될 줄 알았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똘똘한 사원 한 명을 더 붙여서 프로젝트에 내보냈어. 20분 거리의 파견이었거든. 

문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괜찮은 세 명의 디자이너를 함께 보냈는데 못할 게 뭐 있겠어. 그렇게 한 달 정도 잊고 있었는데...

다른 프로젝트를 얼추 마무리하고 한 숨 돌리고 있던 어느 날. 기획 PM으로부터 연락이 왔어. - "와주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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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참 충격적이었지. 한 달 동안 시안을 제대로 완료하지도 못하고, H책임과 K선임은 매일 싸우기만 하고 (이건 J사원으로부터 들은 말), 2주 동안 디자인에 색깔만 바꾸고 있다는 거야. 컨펌은 커녕 자신의 의견도 명확히 정리도 못한 채, 서로 자신이 맞다고 싸우고 있는 거지. 화가 나긴 했지만, 근본적으론 내 잘못이라. 애들을 퇴근시키고 밤을 새웠어.

워낙 디자인 파트의 잘못이 크다 보니, (15주 프로젝트인데, 디자인 파트가 4주를 까먹은 셈이지 ㅠㅠ) 과하게 대응하는 게 맞다 싶어서, 이전 디자인들 전부 삭제하고. 하룻밤 새 3가지 시안을 만들었어. 그리고 다음날 - 마치 처음인 양 프레젠테이션을 했지. 다행히 그중 하나를 바로 선택하고 진행할 수 있었어.

돌이켜 보면, H책임도 K선임도, 하루 안에 할 수 있는 시안이었어. 역시나 예상대로 난이도는 높지 않았고. 내가 하루에 세 개를 잡을 수 있었으니, 못해도 하나 정도는 그들 모두 만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 

내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성자가 아니라서^^ 화가 나기는 했어. 여전히 미운 부분도 있고. ( 나도 손 하나가 아쉬울 정도로 바쁜 와중에, 자기들 재밌게 하라고 인력 넉넉히 챙겨서 보냈는데, 이것 하나 못해서 날 밤새게 만들어? 솔직히 이런 생각이 더 컸지. ㅋㅋ ) 물론, 내가 팀장이니 내 계산착오인 건 온전히 내 잘못인 건 맞지만...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 

그래서 디자인 파트에 할애된 남은 시간 동안, 그 둘에게는 반복적인 업무만 수행하게 하고, 내가 대개의 중요 페이지를 만든 후, 막내 사원이 그에 대한 거의 모든 베리에이션을 만들었지. (사실 이 J사원이 업무 전체의 90%를 진행했다고 봐^^) 원래 H책임과 K선임에게 좋은 발판이 되리라 생각했던 이 프로젝트는, 그 둘 누구에게도 기여도를 줄 수 없는 상태로 끝나고 말았어. 의도와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된 거지. 한 순간의 내 판단 미스 때문에.

당시에 난 이런 "잔 그래픽"에 꽂혀있을 때라 ^^ - (C) Plan High

그 뒤로도,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로고 작업이라든가, 창의적인 업무가 남아 있었지만, 그냥... 혼자 했어. 그들의 의욕이 없어진 상황에서, 이 일을 굳이 나누려는 행위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았고... 사실 나도 많이 귀찮았어. 의욕이 있는 사람들을 잘 드라이브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의욕을 잃은 사람을 이끄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들을 다시 일으켜서 뭐라도 해 보기에는, 내 깜냥도 충분치 않았거든.

초기 서비스명 (올려드림^^) 과 최종 네이밍 (중) 서브 코너? Ask Sam (dn)

두 명은, 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난 후 오래지 않아 퇴사했어.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 프로젝트 문제가 그들에게도 크게 작용했을 거야. 워낙 자존심이 강한 친구들이었으니까. 

섣부르게 케어하고, 검증하지 않고. 개인이 잘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제반 사항들이 돕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를 예상하지 못한 실수가 - 결국 두 직원을 잃게 만들었지. 리더로서 어설펐어.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직원을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어. 누구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포지션이 올라갈수록 손이 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의 케어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해 주었지. 하지만, 난 아무래도 오랫동안 이 상실을 기억하게 될 거 같아.

 

[+]

이 프로젝트에서 개인적으로 성과가 있었던 건, 짧은 줄바꿈을 테스트한 거야. 짧은 단어나 문장으로 구성될 것이 뻔한 항목인데, 굳이 일반적인 표 처럼 긴 너비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즉, 데이터의 결괏값을 예상할 수 있다면, 공간의 효용을 위해 세로 구성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건데, 결과가 생각보다 좋았어.

(c) PlanHigh, rightbrain

서비스의 특성상 아주 짧은 내용의 항목들이 많았어. 기간, 지역, 문의처, 일정, 인원 등의 세부 정보를 유저가 자주 참조하기 때문에 잘 보이는 곳에 노출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표 형태로 하자니, 예상되는 여백의 분포가 개운하지 않았어. 어쩔 수 없이 기획자 분들 고생시켜서, 각 항목들의 평균 글자수, 최대 글자수를 확인 요청했고, 최대 30자가 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어. 그래서, 주 항목을 본문 좌측에 버티컬로 배치하고, 하단의 댓글 아이디 부분과 정렬했지. 또한, 본문의 길이가 거의 일정하다는 것도 디자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 

(c) PlanHigh, rightbrain

하지만, 진행 중에 내용과 구성 변경이 있어서, 위 포맷으로 최종 정리했어. 상단에 모든 참조 항목들을 '먼저' 노출하는 거지. 이 때도 역시 짧은 너비를 사용했는데, 꽤 괜찮았어.

이런 포맷을 일반적인 상황에서 쓰기는 힘들거야. 데이터의 폼과 내용이 꽤 정량적인 경우에만 쓸 수 있겠지.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을 통해서, 실제로 시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유저를 어떻게 안내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학습이 되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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